노끈, 나무조각, 일회용플라스틱컵, 빨대, 꽃, 공, 모형이끼, 트럼프카드, 갈대, 파리채, 배드민턴라켓, 해골가면, 곤충채집망...
어? 분명히 미술학원이라고 했는데… 크레파스나 물감, 스케치북이 보이지 않습니다. 건물 어디에도 ‘미술학원’이라는 단어도 없습니다.
곳곳에 아이들 작품이 걸려있는 걸 보니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제대로 찾아왔나 갸우뚱하고 있으니 빅피쉬아트 이소영 대표가 환히 웃으며 맞아주십니다.
“입구부터 정신없죠? 저희 교육원에서 활용하는 재료들이에요. 아이들이 사탕가게에서 먹고 싶은 사탕을 고르듯이 쓰고 싶은 미술 재료들을 마음껏 고르라고 투명케이스에 담아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배치했어요.”
#발상과 표현의 고른 성장,
창의미술교육
‘어린이가 행복해지는 현대미술교육연구소’
빅피쉬아트의 슬로건입니다.
아이들이 미술을 만나 자유롭게 사고하고 독창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을 키워 예술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새롭게 해석하는 시각을 지닌 어른으로 성장하게 돕겠다는 교육철학을 담았습니다.
미술의 큰 두 축은 발상(상상력)과 표현. 그동안 우리나라 미술교육은 표현력을 키우는 데 치중했습니다. 어린 아이들에게도 꼼꼼하게 칠하기, 꽉 차게 그리기 등 ‘스킬’을 강조했죠. 그러다 보니 미술학원은 그림을 그리는 곳, 미술학원은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해 보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대표는 “미술교육은 바뀌어야 하고 바뀌고 있다.”고 말합니다.
#가능한 모든 것을 상상하라
“빅피쉬아트는 2010년부터 창의미술교육을 해왔습니다. 당시에는 창의미술 자체가 낯설다 보니 부모님들께 개념부터 설명했지만 알음알음 소문이 나고 미술교육의 트렌드가 바뀌면서 학부모님들이 먼저 창의미술을 접하시고, 창의미술교육을 찾아 오셨다는 경우가 늘고 있어요.”
창의미술교육은 발상과 표현의 균형을 추구합니다. 우선 아이들이 가능한 모든 것을 상상하게 합니다.
세상 모든 것이 미술의 재료죠. 빅피쉬아트가 교육원 입구에 미술재료로 파리채, 배드민턴라켓 등을 배치한 이유입니다. 아이들은 직접 재료를 고르고 충분히 탐색하며 상상합니다.
“우리 원에는 ‘안 돼’가 금지어예요. 아이들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미술 재료로 활용하고 싶어해요. 어른이 제지하죠. 빅피쉬 에듀케이터들은 위험하지만 않다면 아이가 원하는 모든 것을 활용합니다.
교육원 오는 길에 흙을 주워오는 아이들도 있어요. 그러면 그 흙을 재료로 미술활동을 해요. 안 될 것 같은 순간에도 ‘잠깐만, 선생님도 생각해볼게.’ 고민하고 ‘한 번 해볼까?’ 같이 도전하죠.”
이 대표는 이런 과정이 ‘요요의 줄을 감는 것’과 같다고 표현합니다. 요요를 할 때 처음에 줄을 잘 감으면 오래 즐길 수 있는 것처럼 발상을 충분히 하면 표현하고 싶은 게 많아지고 더 오래 몰입해서 미술활동을 즐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빅피쉬 에듀케이터들은 아이들과 소통하고 자극하며 발상하는 시간을 충분히 갖습니다. 그렇다고 발상만 중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말 그대로 발상력과 표현력을 고루 키웁니다.
“아이들마다 강점이 달라요. 발상이 뛰어난 아이가 있는 반면 표현이 뛰어난 아이도 있어요. 표현이 부족한 아이는 발상을 현실화할 수 있게, 발상이 부족한 아이는 다양한 사고를 할 수 있게 지도합니다. 그래서 같은 주제에 대해서 늘 3가지 프로젝트를 준비해요. 아이들 특성에 맞춰 맞춤형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거죠.”
#‘미술을 잘한다’는 것의 진짜 의미
빅피쉬아트에 처음 방문하면 아이도 부모도 놀랍니다. 스케치북을 주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명화를 같이 보고 감상을 묻기 때문입니다.
“그림도, 만들기도 미술이고, 작품을 감상하고 토론하고 비평하는 것도 미술이에요. 보통 그림을 잘 그리면 미술을 잘한다고들 하는데 그것도 고정관념이죠.
그림을 보는 걸 잘하는 아이도 있고 미술사를 깊게 파고드는 걸 잘하는 아이도 있어요. 이 모든 게 미술을 잘하는 겁니다.”
그래서 빅피쉬아트는 미술사와 창의학, 다중 지능이론, 융합미술, 시각문화예술 교육 등을 포괄해 프로그램을 기획합니다. 동시대를 살고 있는 작가 탐구를 하는 등 현대미술을 기반으로 다양한 주제를 제시해 아이들마다의 예술적 취향과 강점을 발굴합니다.
“저는 미술관 도슨트로 꾸준히 활동을 하고 있어요. 대학원에서 미술교육을 전공하며 ‘반응중심이론에 따른 뮤지엄 감상’을 주제로 논문을 쓰며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미술관 감상 프로그램인 ‘신나는 미술관’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죠.”
‘아이들이 작품을 감상하고 비평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에 이 대표는 ‘아이들이라 더 순수하고 솔직하고 열린 감상을 한다’고 말합니다.
“미술작품 감상이 특별한 게 아니에요. 화가의 마음, 화가의 표현에 귀기울이는 거죠. 아이들은 감각이 깨어있고 생각에 게으르지 않아요. 적극적으로 감상하고 즐기는 과정에서 예술을 사랑하게 되죠. 화가의 마음에 귀 기울여 본 아이는 타인의 마음에 귀 기울일 줄 알아요.
예술 작품을 보며 ‘이 작품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어떤 재료를 썼을까?’ 여러 각도로 바라보고 살펴 본 아이는 세상을 조금 더 들여다 보고 세상에 더 큰 관심을 가지는 태도를 갖게 되고요. 그렇게 미술을 통해 세상을 사랑하고 내 삶을 사랑하게 되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의 10년, 앞으로의 10년
빅피쉬아트는 올해 만 10년을 맞았습니다. 이 대표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고 싶다고 합니다.
“교육원이라는 특성상 저희 원에 올 수 있는 아이들에게만 교육을 할 수 있어요. 그 점이 아쉬워 온라인에서의 활동을 확대하고 있고요.
그동안 저희 원에서 진행한 프로그램을 엮어 <나도 아티스트(행복한 어린이가 되는 100가지 미술)>, <소소한 드로잉>이라는 책도 냈습니다. 재밌는 건 이 책을 의외로 학교 선생님들이 사신다는 거예요. 책을 보시고 공교육에 적용하시더라고요. 아이들 반응도 좋았다고 하고요.
그래서 공교육과 사교육을 연계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 중이에요. 공교육과 사교육을 떠나 ‘교육’인 거죠. 처음부터 빅피쉬아트를 ‘학원’이 아닌 ‘교육원’이라고 한 이유이기도 하고요.”
사실 이 대표는 ‘빅피쉬아트 대표’로도 이름을 알렸지만 ‘빅쏘’라는 필명으로도 유명합니다.
아이들에게 미술교육을 하며, 도슨트로 활동하며 ‘나는 사람들에게 미술을 전할 때 행복하구나’라고 느껴 온라인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 활동이 <출근길 명화 한 점> <그림은 위로다> <미술에게 말을 걸다> 등 출간과 기업체, 미술관 강의 등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저 역시 미술을 계속 전달할 거예요. 할머니가 되어서도 어떤 방식으로든 미술을 전달할 거예요. 그래서 저 스스로를 ‘아트 메신저’라고 말하고 있고요. 아직 미술이 대중적이지 않은 게 사실이에요. 더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 만화에서 느끼는 공감을 미술에서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물론 어린이 미술교육도 이어갈 겁니다.”
Q. 미술학원 선택할 때 봐야 할 기준은?
광고나 SNS의 사진보다 아이의 반응을 보세요. 눈에 끌리는 것보다 아이가 ‘여기 편해’ ‘이 선생님은 내 말 잘 들어줘’라고 하는 게 중요합니다. 학원이 끝나자마자 ‘재밌었어?’ 묻지 마시고 자기 전에 편안한 분위기에서 ‘어땠어?’라고 물어보세요. 학원 앞에서 물어보면 엄마 눈치, 선생님 눈치보느라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거든요.
그리고 아이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세요. 학원이 다니다 보면 아이가 때로는 그만 다니고 싶다고도 하고 때로는 이 학원 진짜 좋다고도 해요. 그 순간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아이의 감정의 능선을 잘 타고 넘는지, 계획을 가지고 이끄는지를 보세요.
Q. 이런 아이들에게 추천해요.
자신감이 부족한 아이들이요. 미술은 장점을 발견하기 쉽거든요. 미술활동 안에서는 그 아이만의 강점, 특색이 드러날 수밖에 없어요. 그 지점을 교육자가 캐치해 ‘너는 색깔을 참 잘 쓴다. 다른 아이들은 색을 5개만 쓰는데 너는 30개나 쓰네’ ‘어떻게 이렇게 재료를 다양하게 쓸까.’ 아주 작지만 미묘한 칭찬을 할 수 있어요. 자신감이 자라죠.
쉽게 포기하는 아이들에게도 추천해요. 작품을 끝까지 완성하려면 작은 문제를 해결하는 기회가 많거든요. 수업에 기쁘게 들어왔다가 잘 안 된다고 짜증내기도 하고 옆자리 친구는 더 잘하는데 나는 이게 뭐냐고 엎드려버리기도 하다가도 다시 일어나 해보겠다는 과정을 거치며 결국은 완성해내요.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고, 소소한 성취가 쌓이며 문제해결력이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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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틈틈이